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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락그룹 이글스...그들이 한국에 온다

시대의 눈 정통미디어 '이슈인팩트'

by 펜아우라 2011. 2. 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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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락그룹 이글스가 3월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팝을 좀 안다고 하는 한국사람이라면 이글스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그만큼 이글스라는 그룹이 한국인에게

끼친 음악적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겠다. 그건 가히 음악적 세례에 가까운 것이었고, 특히나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접한 이글스의 신들린 듯한 기타연주곡들은 그 자체로 신세계로의 진입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라는 곳을 이국적이며 드라마틱한 장소로 각인시켜준 그들의 불우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는 수 많은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전주 부분의 쥐어짜는 듯한 기타선율엔 다들 한번즘 전율했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제 60을 넘어 초로의 노인들로 나이를 성큼 먹은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한국공연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커 보인다. 중앙일보 관련기사를 통해 이글스와 얽힌 추억을 더듬어본다...

[j Story-1] “호텔 캘리포니아, 우주정거장과 리비아 감옥서도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1.01.08 00:05 / 수정 2011.01.08 11:21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이글스의 그 팝송 

한국에서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1976년 발표)’는 이글스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아바의 ‘댄싱 퀸(Dancing Queen)’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팝송으로 꼽힌다. 특히 옛 LP 음반을 틀어주는 카페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는 늘 압도적인 ‘신청곡 1위’ 자리를 지킨다. 상당히 염세적인 가사인데도 감미로운 멜로디 때문인지, 아니면 ‘캘리포니아’란 지명이 이국적 낭만을 전해주기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여행 갈 때’ 혹은 ‘연인과 함께’ 듣는 팝송으로 늘 이 곡을 선택했다. 특히 기타 듀엣은 이 곡의 백미다. 한때 기타 좀 쳤다는 사람 치고, 이 연주를 따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곡은 모든 ‘기타 키드(Guitar Kid)’의 로망이었다.

 그런 곡이 나온 지 35년 만인 올해, 한국 팬들은 3월 공연을 통해 이글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게 됐다. 이글스 멤버들은 올해 모두 솔로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 올해는 이글스 데뷔 40주년이다. 그들은 “우리 음악 인생을 기념하는 음반이 나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기념할 만한 음반을 만든다는 말이, 이제 음악 인생의 정리 단계로 들어간다는 말로 들렸다.

● 당신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의 사람들이 ‘호텔 캘리포니아’를 수십 년간 최고의 노래로 여기며 많은 사랑을 보내고 있습니다.

돈 헨리=
“영광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 안에서 비행사가 ‘호텔 캘리포니아’를 기상곡으로 틀어놓은 걸 본 적이 있어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온두라스의 산골 오지에서 어떤 청년이 건전지를 넣은 카세트로 이 곡을 듣고 있더군요. 그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You! Hotel California’라고 해서 더 놀랐죠.”

글렌 프라이=“저는 리비아의 감옥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오던 모습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해요.”

돈 헨리=“29세에 이 곡을 썼을 땐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돈은 인터뷰 때 데님 소재의 카키색 셔츠,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47년생인 그는 멤버 중 가장 젊어 보였다. 짧게 자른 금발, 깊은 눈, 흰 얼굴, 잘 다듬어진 수염. 약간 배 나온 티가 났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호텔 캘리포니아’의 리드 보컬이었다. 돈은 드럼을 치며 이 곡을 부른다.

● ‘드럼을 치는 리드 보컬’을 신선하게 받아들인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돈 헨리:
“우리 모두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모두가 보컬이죠. 다만 그 곡의 뼈대를 만든 멤버가 대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나는 드러머니까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른 것뿐이고요.”

1970년대 초반 이글스 멤버는 다섯 명이었다. 왼쪽부터 랜디 마이스너(Randy Meisner), 글렌 프라이,조 월시, 돈 헨리, 돈 펠더(Don Felder). Getty Images/멀티비츠
● ‘호텔 캘리포니아’엔 하드록의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죠. 하지만 무엇 하나로 규정하긴 힘든 곡이기도 합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받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글렌 프라이=
“곡을 만드는 건 양탄자(rug)를 짜는 것과 같아요. 이 곡을 만들 때 돈과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요소들을 섞고 싶어 했죠. 레게뿐만 아니라 로큰롤과 멕시코·스페인·라틴 음악 등을 섞어 재미있고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려고요. 아마도 그런 노력이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낸 것 아닌가 싶어요.”

● 기타 듀엣은 이 곡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죠. 그 부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조 월시=
“그건 일종의 대화입니다. 아니, 경쟁입니다. 마치 싸우듯, 저돌적인 에너지를 담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겁니다. ‘내가 저 녀석보다 잘 쳐야지’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하하하. 정말 그랬죠. (웃다가 다시 진지하게) 우리는 서로 다르게 연주하려고 했고, 서로 더 잘 연주하려고 했어요. 많은 연습을 했죠. 경쟁적인 연주가 어느 순간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각의 솔로 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짜였고요. ‘흥미로운 다름(interesting difference)’이 만들어 낸 결과였습니다.”

● 그 노래는 구설수에 여러 번 올랐죠. 가사 내용이 사교(邪敎)집단이나 정신병원부터 사탄, 퇴색한 아메리칸 드림을 뜻한다는 말이 무성했었죠.

글렌 프라이=
“곡을 만들 당시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지 홀로 사막을 운전하고, 적막한 호텔에 가서 익숙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등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만 있었을 뿐이죠. 비틀스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처럼 팬들이 함께 상상하며 그리길 원했을 뿐,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틀스의 그 노래도 마약 ‘LSD(곡의 첫 글자를 따서)’를 뜻한다는 어이없는 말도 돌지 않았습니까. 우리 노래에도 여러 억측이 있었죠.”

돈 헨리=“우리가 이 곡에서 말하고자 했던 캘리포니아는 꿈보다는 ‘환상’에 가깝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통해 만들어진 캘리포니아와 미국에 대한 환상 말입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미국은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기회를 잡을 순 없었죠.”

 돈은 이 대목에서 현실 정치로 이야기를 옮겨왔다. 그는 “지금은 기회조차 박탈됐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미국에서 기회가 사라졌다는 건 무엇을 말합니까.

돈 헨리=
“2008년 경제위기 이후로 캘리포니아는 파산했죠. 우리는 할리우드 스타를 주지사로 뽑았어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는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어쨌거나, 미국은 지금 어려운 시기(tough time)를 보내고 있어요.”

● 민주당을 지지하는군요.

돈 헨리=
“맞습니다.”

● 지금 말한 부분들도 기사화될 수 있습니다.

돈 헨리=
“그럼요. 얼마든지요.”

 컨트리 음악을 해온 이글스에 대해 많은 이들, 특히 미국 이외 지역에 사는 이들은 ‘백인 문화를 대표하는 그룹’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게다가 ‘이글(독수리)’은 미국을 상징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그래서 더욱 이글스는 미국의 보수적 문화를 대변한다는 시각이 많았다. 어떤 평론가는 “백인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온 이글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뒤 변화된 미국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멜버른=강인식 기자

(왼쪽부터 사진 설명) 사진=Sam Jones
돈 헨리 Don Henley 보컬·드럼 64세, 미국 텍사스주 길머 출신

노스 텍사스 주립대 중퇴, 영화 ‘007 문레이커’의 여배우 로이스 칠스와 교제, 95년 텍사스 출신 모델 샤론 서머롤과 결혼, 90년 ‘미국 월든숲 보호 단체(Walden Woods Project)’ 설립 등 왕성한 사회 활동

글렌 프라이 Glenn Frey 보컬·기타 63세,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태생

고교 때 작가 잭 케루악(비트 문화 상징)과 제임스 딘에 심취, 80년대 인기 범죄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에 초청 출연, 90년대 후반에 자신의 음반회사 ‘미션 레코드’를 변호사와 공동 설립

조 월시 Joe Walsh 보컬·기타 64세, 캔자스주 위치타 출생

제임스갱·반스톰 등의 밴드에서 활동하다 75년 이글스 합류, 아마추어 무선사로 활발한 활동(호출부호: WB6ACU), 80년 미국 대선 때 관심을 끌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기름을 무상 제공한다는 공약 등 제시

티머시 슈밋 Timothy B. Schmit 보컬·베이스 64세,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출신

어릴 때 음악가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트레일러 생활, 새크라멘토 주립 단과대학 심리학과 중퇴, 70년대 그룹 포코(Poco)에서 베이스 주자로 활동하다 77년 이글스 합류, 팬들과 따뜻한 교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

활공과 추락, 재기의 휴먼 스토리

앨범으로 본 이글스 연대기

일회용 급조 밴드로 출발하다


때론 ‘작은 인연’이 인생의 물줄기를 바꾼다. 1971년 봄, 유명 여가수 린다 론스태드는 연주자를 물색하다 돈 헨리(드럼)와 글렌 프라이(기타)를 영입했다. 얼마 뒤 랜디 마이스너(베이스)와 버니 리든(기타)도 합류했다. 원래 그들은 일회용이었다. 7월 디즈니랜드에서 열린 론스태드 공연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질…. 그러나 4인조는 환상의 궁합을 뽐냈다. 론스태드가 “밴드를 만들어 보라”고 격려했다. 멤버들도 의기투합했다.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국적 향수를 자극하다

이글스(Eagles, 1972)


영국에서 녹음한 데뷔 앨범은 대박이었다. 미국 빌보드 차트의 ‘톱 40’에 3곡이 올랐다. 타이틀 곡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는 원래 글렌의 이웃에 살던 동료 음악가 잭슨 브라운이 쓴 곡이었다. 애리조나주 윈슬로와 66번 국도변의 멋진 풍광, 그러나 신설 고속도로에 밀려 잊혀지는 향수적 정취를 경쾌한 컨트리풍 노래로 그려 음악 팬을 사로잡았다. 이 곡으로 독수리는 단숨에 비상(飛翔) 날개를 달았다.

재기발랄 자신감

데스페라도(Desperado, 1973)


성공은 자신감과 상상력을 키운다. 두 번째 앨범은 서부 활극을 테마로 삼아 멤버들과 록스타들의 삶을 재치 있게 노래했다. 앞 표지엔 카우보이 복장의 멤버 4인이, 뒷면엔 멤버를 포함한 6명이 총에 맞아 죽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앨범 전체적으로 1890년대 말의 전설적 무법자 ‘둘린 달튼’ 스토리를 담아냈다. 돈과 글렌이 음반 제작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밴드 리더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변화를 시도하다

온 더 보더(On the border, 1974)


돈과 글렌은 새로운 걸 원했다. 컨트리 음악에서 벗어나 하드록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이었다. 돈 펠더라는 기타리스트가 다섯 번째 멤버로 끼었다. 독수리 5형제가 된 것이다. 이 앨범에선 ‘베스트 오브 마이 러브(Best of My Love)’가 75년 3월 빌보드 싱글 1위를 차지했다. 74년 캘리포니아의 ‘잼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땐 20만 관객의 운집 속에서 블랙 사바스, 딥퍼플 같은 시대의 아이콘 밴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j 칵테일 >> 1회 공연 수입 ‘레이디 가가’보다 많아

713억원 이글스가 최근 1년간 공연으로 번 수입
세계 가수 중 7위 기록
1위 본 조비(록 가수) 1684억원
10위 폴 매카트니(전 비틀스 멤버) 640억원


인터뷰 전날 밤 이글스의 공연을 봤다. 멜버른에서만 나흘째 공연이었지만 1만4000여 관중석은 매진이었다. 미국 음악 차트 ‘빌보드’가 집계한 2009년 11월~지난해 11월 1년간 세계의 ‘톱 25 공연’ 순위에 따르면 이글스는 6200만 달러(약 713억원)를 넘게 벌어 7위에 올랐다. 그러나 공연당 수입을 따지면 3위권으로 올라간다. 4위에 오른 레이디 가가(1억1600만 달러)의 경우 122회 공연을 했지만, 60대 멤버로 구성된 이글스는 40차례만 무대에 섰다. 레이디 가가는 공연 1회당 95만 달러 남짓, 이글스는 155만 달러를 벌었다. 공연 기획사에 따르면 이글스는 요즘 잘나가는 마룬5, 제이슨 므라즈의 두 배가 넘는 개런티를 받는다. 공연의 횟수를 놓고 봤을 때 이글스를 확실히 앞선다고 할 수 있는 가수는 아일랜드 그룹 U2 정도다. 미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보다 많은 판매고를 올린 앨범을 보유한 이글스(히트곡 모음,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2900만 장)의 저력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2900만 장 이글스의 ‘히트곡 모음 앨범’ 미국 판매량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앨범(2800만 장)을
능가하는 역대 1위 기록


공연 직전 기자는 초대 손님 자격으로 무대를 둘러볼 수 있었다. 멤버당 20~30대의 기타가 순서대로 무대 뒤에 진열돼 있었다. 각 곡마다 표현하려는 것이 다르고, 그에 따라 악기의 종류가 다르고, 준비의 정도가 다르다. 그를 위해 멤버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수십 대의 악기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수십 년간 같은 곡을 연주해온 그들이지만, 이날도 공연 3시간 전에 나와 모든 곡의 연주 준비 여부를 점검했다. 리허설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악기를 포함해 그들의 무대에 사용되는 장비는 모두 38t. 컨테이너를 나르는 대형 트럭이 13대나 동원된다. 순회공연 스태프는 75명, 현지 스태프는 60명.

5개 이글스의 빌보드 싱글 1위 곡
Best Of My Love (75년 3월)
One Of These Nights (75년 6월)
New Kid In Town (77년 2월)
Hotel California (77년 5월)
Heartache Tonight (79년 11월)


 
무대 한편 스피커 위엔 ‘박하사탕’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살아 있는 전설들은 그 사탕으로 목을 달래며 3시간 이상 노래를 이어갔다.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아이 캔트 텔 유 와이(I can’t tell you why)‘를 거쳐 앙코르 곡 ‘데스페라도(Desperado)’까지 30곡 정도를 거침없이 소화했다. 그들은 무대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이글스의 무대는 ‘오래된 것’으로 촘촘히 짜여 있었다. 36년 된 로드 매니저, 35년 된 투어 매니저, 36년 된 홍보 담당자, 온통 30년 이상 함께한 스태프들. 그리고 40년간 이글스를 사랑하는 팬들까지. ‘데스페라도’를 부르는 돈 헨리의 목소리보다,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노부부의 얼굴에서 이글스의 위대함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j Story-2] “북한이 공격했는데 … 한국 상황 괜찮은가”

 

[중앙일보] 입력 2011.01.08 00:17 / 수정 2011.01.08 11:20

이글스…내한공연에 대해

 


이글스와의 인터뷰는 멤버들의 ‘매우 사적이고 삼엄한 호텔방’에서 이뤄졌다. 멜버른 시내에 위치한 크라운 호텔엔 스위트룸으로만 구성된 층이 있다. 이곳에 머문 멤버들에게 접근하려면 일반 투숙객용이 아닌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인터뷰는 각 멤버의 방을 돌며 1명씩 ‘스페셜하게’ 진행됐다. 주어진 시간은 멤버당 30분이었지만, 좀 길어진다고 저지하지 않았다. 멤버들은 매우 진지했고 매너도 좋았다. 개인별 인터뷰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글렌 프라이의 방은 코너에 마련된 스위트룸이었다. 멜버른의 전경과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뉴밸런스 운동화를 신은 글렌은 콜라 잔에 얼음을 채우고 있었다. 63세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한국 상황은 괜찮은가”라고 물었다.

● 한국 상황이라니요.

 “정치적 상황 말입니다. 북한이 공격을 했잖아요.”

●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걸 말하는 건가요.

 “주민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도 있는 걸로 압니다.”

● 매우 구체적으로 알고 있군요.

 “김정일이 아들의 위치를 격상시키기 위해 이번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습니까.

 “난 가수지만 매일 뉴스를 챙겨요. 날씨 정보도 매일 보고, 국제 뉴스도 계속 읽습니다. 한국에 공연 가서도 뉴욕 타임스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마도 CNN·BBC 등 뉴스 채널이 전한 북한의 연평도 공격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포탄이 민가에 떨어져 검은 연기가 치솟는 모습을 봤다면 한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는 이들 머릿속의 ‘한국 이미지’는 아주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티머시 슈밋도 “남북의 대치 상황이 염려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처음 가는 곳이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그러던 중 연평도 소식을 듣게 됐다”며 “한국과 북한의 주민 그 누구도 다치지 않길 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그들의 사전 지식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글렌 프라이는 미국 무대에서 활동 중인 ‘박세리’와 ‘최경주’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며 거론했다. “매우 뛰어난 선수며 미국에서 사랑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 박(Park·박찬호) 등 좋은 선수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그는 ‘코리안 바비큐(불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했고,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같은 한국말을 제대로 배웠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 중 이글스의 셋리스트(set-list·공연 선곡)에는 없는 게 있다. 바로 ‘새드 카페(Sad Caf<00E9>)’다. 리더 격으로 셋리스트를 정하는 위치에 있는 돈 헨리와 글렌 프라이는 “한국에서 ‘새드 카페’가 인기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귀띔했다.

● 한국 팬들은 새드 카페를 듣고 싶어합니다.

돈 헨리=
“그동안 ‘새드 카페’는 무대에 올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연주하기 불편한 곡이죠. 그런 노래까지 사랑해주다니 놀랍습니다. 모든 건 글렌이 결정하는데, 제가 건의할게요. 한국 팬들이 사랑하는 곡이라면 당연히 검토해 봐야죠.”

● 한국인이 좋아하는 곡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돈 헨리=
“아시아인들은 부드럽고 감성적인 곡을 좋아합니다. 꼭 한국만 그런 건 아니죠. 일본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르면 너무나 조용합니다. 오직 곡에만 몰입하고 싶은 거죠. 하지만 미국에선 정말 시끄러워요. 우리는 그런 공연의 분위기에서 각국 팬들의 성향 같은 걸 느끼죠.”

● 티머시가 부른 ‘아이 캔트 텔 유 와이(I can’t tell you why)’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보컬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곡을 한층 빛내는 것 같습니다.

티머시=
“1977년 돈과 글렌이 그룹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고, 78년부터 함께 작업했죠. 이글스는 밴드 모두가 보컬로 참여합니다. 마침 내게도 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이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고, 1년 반이 지난 뒤 모두 모여 그 곡을 들었습니다. 돈이 들은 후 ‘이 곡이 너를 세상에 알리게 될 거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한국에서 이글스 노래는 오직 발매된 음반으로만 들을 수 있다. 온라인 판권은 모두 막혀 있다. 돈 헨리가 이에 대해 구체적 답변을 해줬다.

● 많은 한국 팬이 이글스 노래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듣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돈을 주고 사려 해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온라인 판매를 고려하지는 않는지요.

 “시대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디지털 유통이 음악 산업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불법 복제가 만연하면서, 음악인들이 오랜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은 이제 공연밖에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돈이 되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룹은 제한돼 있고요. 이글스는 축복받은 경우죠. 결국 아티스트는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콘텐트 제공업자만 남게 될 겁니다. 하지만 한국 팬들이 원한다면 음반사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팬은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야죠.”

● 이글스의 결정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와도 관계 있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2006년 글렌과 내가 한국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데스페라도’를 광고 음악으로 사용했죠.”

 돈은 한국이 저작권에 대해 엄격하지 않다는 걸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갈수록 작아지는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예전에는 큰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어요. 우리는 정성스럽게 녹음을 했죠. 우리의 모든 연주가 잘 담기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축소된 기계에서 나오는 작은 이어폰으로는 최상의 음악을 들을 수 없어요. 아티스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음악을 팬들이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세상이 된 거 같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음악 자체보다 이동성과 편리성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죠.”

월드스타로의 도약

원 오브 디즈 나이츠(One of these nights, 1975)


창업 공신 버니 리든이 이 앨범을 끝으로 탈퇴했다. 음악 세계가 다르다는 이유였다. 빈자리는 기타리스트 조 월시가 채웠다. 이글스 곡조는 초기 컨트리 스타일이 사라지고 훨씬 더 강렬해졌다. 이 앨범도 뜨거운 지지를 받았고, 해외에서 인기를 끌며 이글스를 ‘월드스타’로 만들었다.

‘아메리칸 드림’의 그림자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1976)


앨범에 수록된 ‘호텔 캘리포니아’는 76년 발표 뒤에 빌보드 1위에 올랐다. 말할 나위 없는 이글스의 대표곡이자 록 음반사에 빛나는 명곡이 됐다. 리드 보컬은 돈 헨리가 맡고, 가슴 저린 그 유명한 기타 듀엣 연주는 돈 펠더와 조 월시가 담당했다. 알듯 모를 듯 묘한 가사는 논쟁을 유발했다. 돈 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호텔 캘리포니아가 뭘 뜻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 노래는 기본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부분을 그리고 있다. 미국 사회의 극단 같은 것도 담고 있고.” 창립 멤버 마이스너는 이 음반을 끝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겠다며 네브래스카주로 귀향키로 했다. 빈자리는 티머시 슈밋이 대신했다.

불신과 해산

더 롱 런(The long run, 1979)


창공을 날던 독수리도 시련을 피할 순 없었다. ‘더 롱 런’ 앨범이 ‘호텔 캘리포니아’에 못 미친다는 평단의 비난이 나왔다. 성공에 도취됐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롱 런’이란 앨범명과 달리 멤버들이 삐걱대고 있었다. 80년 7월 31일 캘리포니아주의 롱(Long) 비치. 훗날 ‘롱(Wrong) 비치의 긴 밤’으로 알려진 악몽이 있었다. 상원의원 선거 지지 공연을 펼쳤다가 돈 펠더와 글렌 등 일부 멤버 간 불화가 고조됐다. 독수리의 추락을 알리는 밤인 듯했다. 80년 11월에 나온 ‘이글스 라이브’ 앨범의 녹음은 돈 헨리와 글렌이 맡았지만 둘은 동부와 서부에 따로 떨어져 ‘특급우편’을 주고받으며 작업물을 정리할 정도였다. 독수리는 끝내 해체의 아픔을 겪고 만다.

재결합

“우린 오랜 휴가를 떠났던 것”(1994~현재)


해산 14년 만에 컨트리 음악 동료들이 이글스를 기리는 헌정 앨범 ‘커먼 스레드(Common Thread)’를 내놓았다. 뮤직 비디오 제작 과정에서 이글스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멤버들 마음도 흔들렸다. 마침내 복귀 앨범 ‘헬 프리지스 오버(Hell freezes over·94)’가 나왔다. 복귀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등극했다. ‘겟 오버 잇(Get Over It)’을 포함한 신곡 2개는 ‘톱 40’에 올랐다. 투어가 96년까지 이어지는 동안 앨범은 미국에서만 600만 장이 팔렸다. 재결합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이글스 공연의 티켓 가격은 껑충 뛰며 기록을 경신했고, 멤버들의 공연은 지금까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j story] 해체, 재결합 … 비틀스와의 인연

[중앙일보] 입력 2011.01.08 00:20

story 3 조 월시 “링고 스타와 동서”

1970년대는 비틀스가 미국의 대중문화를 휩쓸던 시기였다. 바로 그때 가장 미국적인 음악, 컨트리와 로큰롤을 들고 비틀스에 대적할 수 있는 그룹 이글스가 탄생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결코 비틀스와 바꾸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이글스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표시한다. 자연스레 두 그룹을 비교하는 말도 많이 나왔었다.

● 돈과 글렌은 ‘이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라는 평이 많습니다.

글렌 프라이=
“돈과 나는 대부분의 노래를 작곡하는 리더입니다. 두 마리의 호랑이는 한 산에 있을 수 없다지만, 비틀스의 존과 폴,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처럼 서로 존중하며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함께해 왔죠. 첫 이글스 앨범에선 함께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1973년부터 함께 작곡하기 시작했고, 공동작업을 했던 첫 주에 ‘데스페라도’와 ‘데킬라 선라이즈’를 만들었어요.”

돈 헨리=“그런 비교는 영광이죠. 비틀스는 우리와 다른 레벨입니다(돈은 한 손으로 ‘비틀스가 저 위에 있다’고 가리키며 얘기했다). 내게도 비틀스는 음악적 영웅이에요. 그들로부터 밴드가 갖춰야 할 많은 것들을 배웠고요. 좋은 밴드란 솔로와는 다르게, 멤버들 각각의 매력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지속적으로 신선함을 줘야 해요. 비틀스는 그런 면에서 위대한 그룹이죠.”

● 곡을 만들고 그룹의 컨셉트를 정할 때 비틀스를 염두에 뒀습니까.

글렌 프라이=
“영국 음악을 생각하며 곡을 만들진 않았습니다. 우리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보컬을 위주로 한 아름다운 멜로디와 좋은 화음을 구사하려 노력했습니다.”

● 월시는 이글스 해체 시절, 비틀스의 멤버 링고 스타와 함께 공연도 했는데요.

조 월시=
“링고를 위해 올드 웨이브(Old Wave)라는 앨범을 프로듀싱해 줬죠. 그러면서 친구가 됐고요. 비틀스 해체 이후 링고는 잘 알려진 스타들을 모아 올스타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그 앨범에서 저도 몇 곡을 불렀어요. 그런 것들이 인연이 돼서인지, 제 아내의 여동생이 링고와 결혼했습니다. 링고와 나는 동서지간이죠. 그를 만난 이후, 비틀스가 세상을 바꾼 것처럼 내 삶도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이글스는 1980년부터 사실상 해체에 들어갔다. 돈 헨리는 팀이 해체되던 시기 언론 인터뷰에서 “지옥이 얼어붙기 전엔 다시 합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14년 후인 1994년 이글스는 ‘지옥이 얼어붙었다(Hell freezes over)’는 앨범을 들고 재결성했다. 재결성 뒤 경제잡지 포브스가 이글스의 수입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미국 연예계를 통틀어 여섯 번째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엔터테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 해체 후에도 많은 이가 잊지 못했습니다.

 
글렌 프라이=
“재미있는 건 우리가 해체한 1980년부터 미국에 클래식 록 라디오(Classic Rock Radio) 채널이 생겼어요. 그래서 해체 이후에도 80년대에 우리 음악이 계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죠. 그 후 92년에 돈 헨리의 도움으로 컨트리 음악 동료들이 모여 ‘커먼 스레드(Common Thread)’라는 헌정 앨범을 만들었는데, 600만 장 이상이 팔렸죠. 이글스의 음악을 갈구하는 이가 많다는 걸 새삼 알게 됐어요. 사실 첫 결성부터 해체할 때까지 시간보다, 재결합 이후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이 더 길어요.”

조 월시=“솔로 활동으로 바빴지만, 아무리 바빠도 해체 이전 우리가 느꼈던 그 유대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죠.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여 연주했을 때, 우린 그제야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 지옥이 얼어붙기 전까진 재결성도 없다는 독설도 뱉었는데요.

돈 헨리=
“문맥 그대로 절대 재결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죠. 그러다 재결합을 했습니다. 제 스스로 제 말을 풍자도 할 겸, 앨범 제목을 ‘Hell Freezes Over’라 했던 겁니다. 나이가 많아 얼마나 더 같이할지 알 수 없지만, 행복한 시간입니다. 올해 우리는 모두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1월에 컨트리 앨범을 낼 거고, 그 이후엔 R&B 앨범도 낼 겁니다. 그리고 자전적 앨범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j Story] 음악 평론가 임진모 ‘록의 전설, 이글스’

[중앙일보] 입력 2011.01.08 00:23

영국 비틀스에 대적한 ‘미국 음악의 자존심’  이글스는 흑인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이 부상하기 전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 최고의 스타밴드였다. 이글스의 퇴장과 함께 팝뮤직의 헤게모니가 백인 컨트리 음악에서 흑인 리듬앤블루스(R&B)로 넘어갔다고 팝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다는 1970년대는 록이 중심에 섰고 그 판세는 미국이 아닌 영국이 쥐고 흔들던 시절이었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퀸, 엘턴 존, 폴 매카트니 같은 영국 출신의 막강한 스타들이 판치고 있던 때, 만약 이글스마저 없었다면 미국 음악계는 영국에 땅만 빌려주는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글스를 ‘미국 음악의 자존심’과 동격화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영국에 비틀스가 있다면 미국에는 이글스가 있다!”고 말한다.

이글스 하면 조건반사처럼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곡이 떠오른다. 이 곡이 대박을 치면서 실은 그 이전 히트곡을 집대성한 앨범도 덩달아 팔려나간 것이다. 이글스의 음악은 백인 전통음악인 컨트리를 록으로 해석한 이른바 컨트리 록의 요소가 강했지만 ‘호텔 캘리포니아’는 컨트리 냄새를 지워 어느 나라 록 팬이라도 흡수할 ‘유니버설 록’의 진수를 구현했다.

이 곡은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 에릭 클랩턴이 쓴 ‘레일라(Layla)’와 함께 20세기 록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아메리칸 드림의 붕괴를 암시하는, 약간은 아리송한 가사 내용은 곡에 신비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한 비평가는 이 곡을 ‘긴장의 1970년대와 탐욕의 1980년대 사이에 위치한 이정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성이 곡의 역사적 가치를 상승시켜 주었음은 분명하다.

 
이글스는 1979년 후속곡 ‘더 롱 런’을 내고 얼마 후 해산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글스에 대한 추억과 재결합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은 끝내 그들을 다시 무대로 불러냈다. 밴드는 1994년에 재결합, MTV 공연실황 앨범 ‘헬 프리지스 오버’와 함께 거대한 성공신화를 그려냈다.

2007년 28년 만에 정규 신보 ‘롱 로드 아웃 오브 에덴’을 낸 것이 말해주듯 앨범이 많지 않은 전형적인 과작(寡作) 아티스트임에도 그들의 변함없는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국내 공연기획사들 사이에도 2000년대 들어서도 늘 ‘섭외 0순위’였다. 비틀스처럼 멤버 넷이 모두 곡을 쓰고 보컬을 맡는 것도 그들의 각별한 장점 가운데 하나다.

국내 팬들은 이글스의 내한공연을 학수고대해 왔다. 이글스가 오는 것은 하나의 인기 밴드가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록 전설’이 오는 것이다.  

팝 칼럼니스트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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