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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폐사지처럼 산다

필이 꽂힌 詩

by 펜아우라 2013. 9. 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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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처럼 산다
-정호승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시절의 공기가 혼탁하다면, 내 지친영혼 하나 온전히 누워 쉴 때가 없다면,  어딘가 폐사지가 있다면 기꺼이 홀연히 찾아들어가고 싶다. 그곳에서 한때 영욕을 보냈을 폐사지의 기운과 대화하고, 인생의 작은 해답 하나 귀동냥해 오리라. 음습한 공기, 음습한 세태, 늘 불평의 시간을 보내야하는 불만족의 영혼의 소유자가 찾아들어갈 폐사지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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