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유년의 밥상엔 늘 고구마가 있었다
살얼음 동동 낀 동치미와 따끈한 고구마가
그땐 고구마가 왜 그리도 싫었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시절 고구마는 안방에서 살았다
문풍지 서럽게 울던 겨울밤에
수숫단 옷을 겹겹이 껴입고서
뒤주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입이 궁금한 어른들
허기진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화롯불의 고구마 한입에
시꺼먼 입가에 피어나는 행복한 웃음꽃
유년의 밥상엔 늘 고구마가 있었다.
-조찬현
<내식대로 해석>
구황식품(救荒食品)의 대명사 고구마에 얽힌 소박한 시다. 먹거리가 부족한 시절 주식인 쌀을 보충했던 부식이었기에 결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추억과 낭만의 촉매가 돼 향수음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시골 어머니는 지금도 고구마에 대한 감정이 썩 유쾌하지 않은 눈치다. 굶주림을 떠올리게 하는 고구마가 달갑지 않아서일게다. 그러나 오리지널 혹독한 보릿고개 세대와는 거리가 먼 내게 고구마는 그저 기억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추억속 음식이다.
시에서처럼 그 옛날 고향집 안방에는 수숫단으로 만든 뒤주에 가을에 수확한 크고 빨간 고구마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그것들은 잠에 들기 전 최고의 주전부리가 되어주었다. 저녁밥 먹기 전에 군불 떼고 난 아궁이에 대여섯 개 묻어놓고 초저녁 출출해지면 속살이 노릿노릿하게 익은 고구마를 꺼내 까 먹는 맛은 꿀맛이었다. 아궁이에 깜빡하고 고구마 넣는 일을 잊어버린 날은 생고구마를 통째로 깎아먹기도 했다. 외풍이 셌던 탓에 고구마는 방 안에 있어도 적당히 얼지않을 만큼 차갑게 저장 돼 아삭아삭 씹히며 시원한 단물을 선물했다. 화롯불은 아무래도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생존하셨을 때쯤이지 않나 싶다.
김광균이 그의 시 설야(雪夜)에서 노래한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벗는 소리" 같은 눈이 내리던 한겨울밤 동치미국물에 곁들여 먹는 군고구마 맛을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젠 그 옛날 고구마의 맛을 이렇게 활자에 의지해 추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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