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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말 아재를 추억함 외 1편-이용한

필이 꽂힌 詩

by 펜아우라 2009. 4. 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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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말 아재를 추억함

 

숙모집에 얹혀 살던 덧말 아재의 오래된 전축에서

처량하게 흘러나왔지 배호의 목소리였던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던

그때 나는 국민학생 라면땅,건빵,눈깔사탕

내 그리움은 오직 먹는 것에만 있었을 터,

아버지의 멀쩡한 고무신을 숨기고

일주일 후에나 올 엿장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난 여물통 앞에서 죽도록 맞았지

꿈벅거리던 암소의 눈방울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도 덧말 아재 방에선 누가 우~울어,하는

배호의 목소리,내 눈물을 닦아주던 아재의 손,

일 원짜리 눈깔사탕,

난 도랑 건너 버드나무집까지 편지배달을 갔다

내가 보는 앞에서 아재의 편지를 북북 찢던 그 누나

그년 때문에 아재는 두번씩이나  농약을 마셨다

아재 나이 스물 몇이었더라 읍내 병원에서

윗속을 깡끄리 청소하고 돌아온 아재는

천정 벽지에 그려진 아메바 무늬만 넋없이 올려다 보았다

이후,늘 꿈에 취해 살던 몽유병의 사내

꿈속에서도 꿈을 찾아 하늘을 헤매던

그에게는 끝까지 배호의 음성을 들려주던 오래된

전축만이 소중했다

그에게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그의 유품이 된 전축,

배호보다 먼저 간,

나에게 지금 그의 모습은 없다

그를 떠올릴때면 배호의 처량한 목소리와

낡은 전축만이 떠오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무등 태우고,서울이 보이니?

어디까지 보이니?,  하던

자신의 꿈을 내 눈을 통해 보려 했던

덧말 아재,

아무도 그를 무등 태워 주진 못했다.

 

 

 

까닭 모를 슬픔

 

창밖을 본다

저 몸밖의 나무들

벗을 것 다 벗은 나무의 몰골이란!

-뭐가 보이나?

사장이 다가와 너의 시야를 가린다

너는 나무와 너의 눈을 가로막은

그 뚱뚱한 몸집의 방해자를 치워버리고 싶다

그에게 너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때때로 찾아오는 까닭모를 슬픔에 대하여  너 아니?

저 깊은 슬픔의 저탄장으로부터 불현듯 솟구쳐오르는

시커먼 슬픔 덩어리에 대하여......

 

소주방에서 혼자 술 마시는 남자

고개숙인 남자

처자식이 있어도 외로운 남자

취하는 남자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토하는 남자

그 손가락으로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는 남자

여보! 보약먹을땐 술 좀 마시지 말라고 했죠? 했어요, 안했어요?

보약이 없으면 곧 무너질 것 같은 남자

애들 보기가 민망한 남자

아내 앞에서 쇠퇴한 성기를 억지로 발기시키는,

눈물겨운 남자.

 

 

<내식대로 해석>

언젠가부터 이렇게 일상을 담담하게 얘기하듯 풀어쓴 일종의 산문시가 시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기형도의 시가 그렇듯 대체로 80년대 중후반 이후 신진작가들의 시작형태에서 나타난  모습이다. 이런 산문시의 특징이라면 술술 풀어쓴 형식으로 함축적이거나 은유적이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자 특징이다. 일상을 적나라하리만치 사실적으로 풀어쓴 이용한의 위 시가 갖는 매력이자 강점이다. 시 <덧말아재를 추억함>을 보자. 덧말아재라는 한 인간에 대한 한편의 보고서이자 짧은 일기적 서사시다. 한 여자를 죽도록 사랑해 몇 번의 농약을 마셔야했고, 동시에 요절한 천재가수 배호의 음색을 사랑했던 덧말아재. 일생에 단 한번일지도 모를, 아니 어쩌면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을 수 도 있는 사랑에 송두리째 인생을 건 사람. 그런 아재가 파격적이지 않고 폐부 깊숙한 곳 까지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건 왜 일까?!  마지막 "자신의 꿈을 내 눈을 통해 보려 했던 덧말 아재, 아무도 그를 무등 태워 주진 못했다." 참 슬픈 레퀴엠 같은 시다.

 

시 <까닭모를 슬픔>은 또 얼마나 불운한 이 시대 중년의 표상인가!! 이 땅의 어두운 시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구분짓다보면 경제적으로 땅을 쳐야했던 시기가 IMF환란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년의 모습은 늘 쓸쓸하고 힘겹다. 퇴근길 파김치가 되어 풀이 잔뜩 죽은 모습을 한 중년의 모습을 우리는 언젠가부터 너무 쉽게 목격하게 됐다. "아내 앞에서 쇠퇴한 성기를 억지로 발기시키는, 눈물겨운 남자."를 우리는 너무 쉽게 보고 듣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우울함을 밑에 깔고, 이 시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묘한 배설감 같은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낀다. 마치 진한 페이소스의 그것 같은...

 

시인 이용한은 두세권의 시집을 내고 현재 블로거들 사이에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구름과연어혹은우기의여인숙-Http://gurum.tistory.com/>이라는 파워블로그의 운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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