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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名不虛傳] 일깨워 준 '세시봉 열풍'

대중문화 엿보기

by 펜아우라 2011. 2. 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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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 MBC는 의미 있는 오락프로(?) 하나를 내보냈다.

바로 '세시봉 설날 특집'을 내보낸 것. 그것도 2회 연속으로...

60~70년대 통기타 문화를 선도했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이장희 양희은 등 '세시봉 사단'으로 통칭되는

가수들이 모여 특별한 콘서트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그들은 모두 60을 넘어서

이젠 포크계 원로급 대열에 선 가수들이다.

이들을 아는 중장년층은 과거 향수를 자극받은 듯 이들의 노래 한곡한곡, 추억담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풍 노래에만 익숙했던 젊은세대 또한 이들의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가사와 리듬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며 환호했다.

한 집안에서 하나의 텔레비전을 놓고 아버지와 어머니 딸과 아들이 나란히

동일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공감의 박수를 보낸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했을까?!

온통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으로 얼룩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금의

가요계에 인간적인 세시봉 사단의 노래는 한줄기 희망의 섬광 과도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낭만이 살아있고, 의리가 살아있고, 따뜻한 인간적 체취를 향유할 수 있는

60.70년대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는 각박한 시대 뜨끈한 안방 같은

느낌을 주었을 터...

 

나 역시 젠틀한 윤형주의 풍모에, 어눌하지만 밉지않은 조영남의 익살에, 영원히 늙지않을 것 같은 피터팬 같은

김세환의 외모에, 송창식의 열정적이면서 청아한 목소리에 기꺼이 매료 됐다.

또 그들과의 우정을 재치 있는 편지 형식으로 정리해와 낭독한

'그건 너'의 주인공 이장희의 멋스러움에 감탄했다.

 

마치 시인으로 치면 박인환이나 김수영 청록파 시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같은

사람들의 느낌을 주는 사람들...그들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동시대에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영광이고 축복이라는 어느 팬의 말에 나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갖는 의미는 분명 우리 가요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이자

문화사의 한 흐름으로 추앙받아 마땅할 듯 싶다.

그들은 새삼 우리에게 명불허전 [名不虛傳] 일깨워 준 아우라 그 자체였다.

 

그들을 볼 수 있었던 설 연휴 전 방송시간대도 시의적절했다.

세시봉은 프랑스어로 '이거 정말 좋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번 설날 연휴는 세시봉 사단이 있었기에 더욱 훈훈했다...

(아래는 세시봉 사단을 조명한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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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울린 ‘쎄시봉 콘서트’, 무엇을 남겼나

[김작가의 핫 브레이크] 아이돌 수영대회도 추억을 이기지 못했다. '쎄시봉 콘서트'는 이번 설 연휴의 단연 승리자였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 오랫만에 옛 시절의 낭만을 대변하는 뮤지션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추억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처음이었던 건 아니다. 가요무대도 있고 7080콘서트도 있다. 그러나 '쎄시봉 콘서트'가 특별했던 건, 추억을 먹고 사는 세대가 아닌 지금의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세대들까지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들 또래인 50-60대 뿐만 아니라 20-30대까지 그들이 들려주는 흘러간 하모니와 기타 연주에 귀기울였다. 감탄하고 감동했다. '웨딩 케잌'의 가사에 다시 한번 가슴을 적셨고, 송창식의 장인적 가창에 경탄했으며, 이익균의 발견에 환호했다. 그런 소회와 감상을 블로그와 트위터에 올리고 또 올렸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세대간의 공감이 연휴의 시작과 함께 이뤄졌던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이 콘서트가 예능 프로그램인 '놀러와' 방영 시간대에 편성된 이유도 있을테고, 유재석과 김원희의 사회가 그들을 과거에서 현재로 소환했던 까닭도 있을 거다. 즉, 회고의 대상으로만 머물러 있던 문화가 예능의 형식을 빌어 새로운 것, 또는 발견의 대상으로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시만으로는 공감을 형성할 수 없다. 공감을 만드는 건 욕망이다. '쎄시봉 콘서트'는 지금의 대중음악에 결핍된 지점을 짚어냄으로써 추억뿐 아니라 발견의 욕망을 자극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주도권은 트렌드가 장악해왔다. 얼굴과 장르는 달라졌을지언정,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음악들이 TV와 라디오, 거리의 스피커를 채워왔다. 이 트렌드에 발맞출 수 있었던 자들만이 대중음악의 전부인양 시장을 장악해왔다. 그 과정에서 트렌드가 아닌 자기 음악을 하는 이들, 즉 싱어송라이터나 밴드들에게 주어진 영역은 인디 뿐이었다. 유희열, 이적, 김동률 같은 90년대의 싱어송라이터들이 데뷔했을 때, 그들은 인기 가수였다.

하지만 지금 한국대중음악계에서 과거의 그들처럼 자기 음악을 하는 이들은 평범한 인기 가수가 아닌 인디, 혹은 비주류로 분류된다. '놀러와'에서 이적, 정재형, 루시드 폴, 장기하 등이 출연했을 때 '노래하는 괴짜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은 이런 무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쎄시봉 콘서트'의 주역들은 이미 당대의 인기 가수였다. 즉, 그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하는 주류였다는 얘기다. 심지어 방송 첫 날 양희은의 노래로 대미를 장식했던 '아침 이슬'마저 발표 당시에는 건전 가요로 분류되었을 정도다. 그들 뿐만 아니라 나훈아, 이미자 같은 트로트 가수부터 김트리오 같은 (요즘 개념의) 걸 그룹, 산울림과 신중현같은 록 밴드들까지 70년대 대중음악 지형도의 주류를 차지하는 이들은 다양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룰라와 김건모, 신승훈패닉이 공존하는 90년대 까지 다양성의 명맥은 계승됐다. 그러나 트렌드와 기획이 대중음악 '산업'을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다양성은 실종되고 말았다. 적어도 한국 대부분의 음악 소비자가 음악을 알게 되는 경로인, 방송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도하듯 아이돌은 주류 대중음악과의 동의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유의어 정도는 됐다. 이것이 대중이 선택한 결과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방송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음악인들의 공연이 종종 티켓 판매 차트 최상위권에 오른다거나, 그 흔한 예능 한 번 나가지 않고 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다거나 하는 일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부고 소식으로 처음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랐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에 대한 추모 분위기, 그리고 평일 저녁에 열렸음에도 추모 콘서트 티켓이 삽시간에 동났던 건 또 무엇을 말하는가.

목소리와 기타 만으로 음악을 전하는, 지금 주류 음악계에선 사라져버린 과거의 포크 뮤지션들이 동시대 음악 소비자들까지 삽시간에 포섭했다는 건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트렌드가 아닌, 자기 이야기로서의 음악을 원하는 대중들의 목마름을 말해주는 흐름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쎄시봉 콘서트'는 다양한 욕구를 미디어가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역으로 질타하는 대중의 의사표시였다. 추억과 발견이 함께 들어올린 침묵의 깃발이었다.

칼럼니스트 김작가 noisepop@hanmail.net

[사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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